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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부(慶州府) 건치연혁(建置沿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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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3-29 08:43 조회2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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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록(碑文錄)

경주부 건치연혁(慶州府建置沿革)

경주(慶州)는 원래(元來) 신라(新羅)의 고도(古都)인데 선제오봉(宣帝五鳳) 원년(元年)에 신라시조(新羅始祖) 박혁거세(朴赫居世)가 개국건도(開國建都)하고 국호(國號)를 서나벌(徐那伐)이라 하였다. () 사라(斯羅) 또는 사려(斯廬)라고도 하다가 신라(新羅) 탈해왕(脫解王)때에 와서 시림(始林)에서 닭의 괴이한 일이 있은 후부터 계림(鷄林)이라 고치고 국호(國號)로 삼았다. 기림왕(基臨王)때 다시 신라(新羅)로 다시 고쳤다. 고려태조(高麗太祖) 십팔 년에 경순왕(敬順王) 김부(金溥)가 강복(降服)한 후 경주(慶州)라 하고 대도독부(大都督府)로 올렸다. 성종(成宗)때 동경유수(東京留守)로 고치고 령동도(嶺東道)에 붙었는데 현종(顯宗)때 방어사(防禦使)로 고치고 또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고치고 다시 동경유수(東京留守)로 고쳤다. 삼한회토기(三韓會土記)에 고려삼경(高麗三京)이란 구절(句節)이 있으므로 그대로 두었다. 신종(神宗)때 동경(東京) 야별초(夜別抄)가 난()을 일으켰을 때 군병(軍兵)을 보내어 토평(討平)했다. 후에 동경인(東京人)으로써 신라(新羅)가 왕성(旺盛)한다는 말을 지어가지고 격문(檄文)을 경상(慶尙), 충청(忠淸), 강원(江原), 제도(諸道)에 보내어 반란(反亂)을 도모(圖謀)하려다 강복(降服)했다. 관내(管內)의 주부군현(州府郡縣)을 모두 안동(安東)과 상주(尙州)에 예속(隸屬)시켰다가 고종(高宗)때 다시 유수(留守)로 하고 충렬왕(忠烈王)때 계림(鷄林)으로 고치고 신화(辛禍)가 낙랑조선(樂浪朝鮮)이라 했는데 태종(太宗)때 경주구호(慶州舊號)를 되찾고 세종(世宗)때 진()을 두었다. 군명변천(郡名變遷)은 진한(辰韓), 서라벌(徐羅伐), 사로(斯盧), 신라(新羅), 낙랑(樂浪), 계림(鷄林), 월성(月城), 동경(東京), 금오(今鰲), 문천(蚊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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