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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대(李載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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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3-29 08:42 조회228회 댓글0건

본문

비문록(碑文錄)

의사 재대공 기적비(義士載大公紀蹟碑) 

粤自韓末乙巳勒約之性至庚戌杜屋之祭域中義士時奮起捨軀命衝鋒鎬欲延幾絻之國脉者其成不成有非分之所能强然其喚醒己灰之人心則大矣近故義士奉南李公載大生長原州世家賦性豪邁慷慨有志節即端宗節臣府使諱英華之后仁輝子也每讀史至忱臣烈士以身殉國輒歔欷泣下見國政日非每懷不平之恨矣及勒約成倭置統監司欲呑我彊土公不勝悲憤糾合同志從金準義士丁未冬襲擊高敞敵繼而斬羅州沙湖賦二百餘級戊申春狙擊賊將吉田勝一郎以下百餘名轉戰至魚登山金義士之殉痛哭而歸協賛朴義士珉洙潜設冶匠所居坊蘆田中輸紿武器于義士陳潜據侍郎坊文岩佳洞及用文坊梧桐村寶光等地日夜襲載載斬倭憲兵無數自是倭軍警日事索義兵探問義兵法就于居民答以不知彼殺平民梟首于市衡甚至銃殺而烹之割腹而剝安其外恣行暴虐難可枚擧于是公以老母不離居里隱避草莾間彼欲詷公所在施酷刑于老母叫楚聲聞公出乞弛刑喜執魁首方欲殺之問所願與所能公勵聲曰吾所願復我國權而己吾所能者歌謠也彼許一唱公延頸絶唱一曲彼亦感而監視疎忽公輒脱出終不顯於世嗚呼當國家板蕩之際義士之出萬死若鬪者擧多飄飄如冷灰埋沒姓名而惟公則雜出於野史而蘆田鑄冶之事居人行客樵夫牧子尙能指點咨嗟如昨日事公雖不得彫管之揄揚揄揚之實有如是則足可以傳於束百於公何憾焉其族之虐南秀甫與鄕人士胥慨然治貞石竪公故里來屬余事辭不獲而爲銘曰 皓天有常寇氛掃之乎嗟毅魂歸于故里鄕人通慕高躅尙知叙實掲刻惶惶豊碑販國賦子胡不警玆

辛酉春正月 光山 李玟秀 撰

 

역문(譯文)

여기 역사(歷史)위에 우뚝 선 민족정기(民族精氣)의 상징(象徵)인 애국애족(愛國愛族)에 불타는 정열적(情熱的)인 한 의사(義士)가 있다. 의사(義士)의 성()은 원주이씨(原州李氏)요 이름은 재대(載大)이고 호()는 봉남(奉南)으로 공산면(公山面) 화산(花山)에서 1883년에 태어났다. 고려(高麗) 병부상서(兵部尙書)인 휘() 신우(申佑)님 후예(後裔)로 이조(李朝)에 와서 강릉도호부사(江陵都護府使)인 휘() 영화(英華)님에 이르러 단종(端宗)의 손위(遜位)를 보고 전라도(全羅道) 해남(海南)으로 내려와 낙남조(落南祖)를 이룬바 아버지 인휘(仁煇)님은 그의 11대손(代孫)이요 의사(義士)12대손(代孫)이다. 의사(義士)는 일찍이 선조(宣祖)때 충청수사(忠淸水使)를 지내시고 임란(壬亂)때 충무공(忠武公)과 함께 큰 공을 세운 계정(繼鄭) 장군(將軍)9대 방손(傍孫)이요 해남(海南) 영산사(英山祠) 9충신(忠臣)의 후손(後孫)이기도 하다. 의사(義士)30세의 어린 나이로 단발령(斷髮令)의 반일운동(反日運動)에 참가(參加)했고 왜적(倭敵)의 침입(侵入)으로 나라를 잃을 무렵이던 1906년부터 1909년 사이 함평(咸平), 나주(羅州), 영산포, 죽곡(竹谷), 창평(昌平), 동곡(東谷), 장성(長城), 구례(求禮), 곡성(谷城),영암(靈岩) 등지에서 기삼연(奇參衍), 김준(金準), 김율(金律), 박은수(朴珢洙), 최택현(崔澤鉉), 침남일(沈南一), 김해산(金海山), 박영근(朴永根), 김용구(金容球), 이석용(李錫庸), 조경환(曺京煥) 등의 의병장(義兵將)들과 합세(合勢)하여 목숨을 걸고 일본군(日本軍)에게 항전(抗戰)하였다. 이렇게 여러 해 항전(抗戰)하는 동안의 사이에 어머니가 왜군(倭軍)에게 참혹(慘酷)한 고문(拷問)을 당할 때의 의사(義士)는 홀연(忽然)히 나타나 어머니 대신 감옥(監獄)으로 끌려간 충()과 효()를 다한 의사(義士)였다. 의사(義士)가 옥중(獄中)에서 마지막으로 부른 판소리의 구슬픈 노랫소리에 왜적(倭敵)도 감동(感動)되어 혼몽(昏懜)중에 있을 때 이틈을 이용 탈옥(脫獄)한 후 화산(花山)앞 갯벌의 갈대밭 속에 숨어서 창과 칼을 만들어 의병(義兵)들에게 무기(武器)를 공급(供給)해 주었고 다시 의병(義兵)들의 기지(基址)로 들어가 싸우다 이름도 없이 한줌 흙이 된 고결(高潔)한 의사(義士)였다. 여기 민족(民族)의 제단(祭壇)에 바친 그 고귀(高貴)한 정신(正信)은 겨레의 가슴속에 잊히지 않을 것이며 이 땅 역사(歷史)위에 영원(永遠)히 불꽃같이 활활 타오르리라.

정부에서는 공(公)의 공훈(功勳)을 기리어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追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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