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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李稠) 행장(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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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3-29 08:34 조회243회 댓글0건

본문

비문록(碑文錄)

봉은공 행장(鳳隱公行狀)

公諱稠姓李氏貫原州始祖高麗版圖閣使兵部尙書慶興君諱申佑世襲忠勳代挺名德及麗季有諱攀桂封慶原君與元耘谷先生同守首陽之節乙參杜門洞淸節碑者於公爲傍親也高祖諱固曾祖果川監務諱子長祖別將果川縣監諱洽考諱天明資憲大夫版圖判書妣溫陽方氏希迪之女公之生我朝初而資性沈重德儀混厚幼有岐嶷言語固確及長己知愛人及接物之輕重承襲乎由來誠孝之風克紹家聲怡愉承順兼志軆父母安樂之此則事親之節也奉祭祀則當忌辰雖祁寒烈風沐浴齎明盡其誠敬此則報本之儀也爰及二弟聯槧講劘壎箎湛樂物無爾我之別以叙天倫之樂人無間言則友愛篤也待宗族則和睦並臻交明友情敬不賛有閑則對案矻矻乎 皇明之間名桂籍明時雨露特蒙優渥行靑松府使兼慶尙右道秉節度使政平人和有循良之稱公即耘谷先生之外孫壻也上京歸路齎酒進謁則和詩五首曰當眷瑞雪亂飄簷歌舞樓臺酒價添知子携樽深適意賀豊寂可能兼落梅飄絮灑虚簷春意方濃醉興添堪賀老夫今日事良辰景一時兼坐見飛禽入室簷定知寒氣更增添睡餘忽發陶然興冷淡中間欄漫兼半醉高吟傍短簷野情閑思兩俱添晚晴送日郊園外春事方興氣像兼俯看杯心暎帽簷浩然情興遠仍添願渠早遂平生志忠孝良才一己兼瓜歸眞寶縣飛鳳山下愛其地之閑曠明麗遂卜居明於相地理而文廟及樓榭擇址整建以爲講學鍊武勤力勤穮溉根厚生樂業永垂淳俗因自號鳳隱而終老焉摘取山名而修德趣閑耶墓縣北興邱洞後麓飛龍山前癸坐之原配豊山金氏西裕之女從夫職淑夫人幽閑靜貞極備婦德墓公墓祔生二男一女男長紹生敎授季麟生參奉女適平山申永錫敎導紹生男移忠麟生男培源曾玄以下不錄公以天賦媺質淳厚沈重之性兼恭謹嚴之行英年就學人一己百由孝移忠牧民於厚生固有遺文之可多必傳而歲閲半千累經兵燹之燼而己今其想像遺風己漠日公之後孫昌煥甫奉持若干編稿訪余章川獘舍責以遺事余以無文安取乎先儒之跟故高實地哉固辭不獲己整襟起坐而奉閱則一臠之肉可以知全鼎之味一羽之斑可以見彩鳳全體之美依考華稿而如右云後生之蔑極知僣越而惟待秉筆君子之財擇焉

西紀一九八九(己巳)年十月 日, 慶州 金應煥 謹撰

 

역문(譯文)

()의 휘()는 주(), ()은 이씨(李氏)며 관()은 원주(原州)니 시조(始祖)는 고려(高麗) 판도각사(版圖閣使) 병부상서(兵部尙書) 경흥군(慶興君) 신우(申佑).

대대로 충훈(忠勳)과 덕망(德望)이 이어졌으며 고려(高麗)말에 휘()반계(攀桂)는 경원군(慶原君)에 봉()해졌으며 고려가 망하자 운곡(耘谷)원천석(元天錫)과 수양(首陽)의 충절(忠節)<()이 망하고 주()가 서자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다가 죽은 충신(忠臣)>을 지켜 두문동(杜門洞) 청절비(淸節碑)에 두 번째로 기록되니 공()의 방친(傍親)이 되신다. 고조(高祖)의 휘()는 고(), 증조(曾祖)의 휘()는 자장(子長)이니 과천감무(果川監務)를 지내시고 조()의 휘()는 흡()이니 별장(別將)과 과천현감(果川縣監)을 지내고 고()의 휘()는 천명(天命)이니 자헌대부(資憲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가 되신다, ()는 온양(溫陽) 방희적(方希迪)의 따님이시다. ()이 고려(高麗)말에 탄생(誕生)하였는데 천성(天性)이 침착하고 용모(容貌)가 혼후하여 어려서 영리하여 말이 정확하였는데 성장하면서 남을 사랑하고 사물(事物)의 경중(輕重)을 판단하여 처리 할 줄 알고 효성(孝誠)의 가풍(家風)을 이어받아 부모(父母)를 봉양하는데 뜻에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여 즐겁고 편하게 하니 이것이 사친(事親)하는 절차(節次)며 봉제사(奉祭祀)에 기일(忌日)을 당하면 아무리 춥고 바람이 매서워도 목욕재계하여 정성과 공경을 다하니 이것은 보본(報本)하는 예의며 두 아우와 책상을 나란히 하고 토론(討論)하면서 화목하고 즐기며 물건에 네것 내것 구별하지 천륜(天倫)을 즐기어 남들이 이간을 하지 못하도록 우애(友愛)가 두텁고 종족(宗族)을 접대하는데 화목하고 친구를 사귀는데 인정과 존경을 소홀하지 아니하고 여가에 책상을 마주하면 공부에 열중하였다. 임금께서 총명하시어 공()을 과거(科擧)에서 장원으로 발탁하고 특별 우대하여 청송부사(靑松府使)와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를 겸직(兼職)토록 하시니 정사(政事)가 공평(公平)하여 백성들이 평화로우니 칭송하기를 법을 잘 지키는 어진 사또라고 칭찬하였다.

()은 운곡(耘谷) 선생의 외손서(外孫壻)로 상경(上京)하였다가 귀로(歸路)에 술병을 들고 가서 뵈오니 선생께서 시() 5(五首)를 지으니

(운곡행록( 耘谷行錄) 시사(詩史) 5권 중 갑술(甲戌) 1394227일에 눈이 내리는데 이주(李稠)가 술을 가지고 찾아오다)

, 봄이자 상서로운 눈이 추녀 끝에 날아드니

노래하고 춤추는 누대(樓台)에 술값이 더해가리

알겠노라 술을 가지고온 그대의 뜻이

곧 풍년축하와 심심풀이를 겸한 것 인줄을

, 떨어지는 매화와 나부끼는 버들가지 추녀 끝에 뿌리니

봄뜻은 바야흐로 무르녹고 취한 흥은 더 하여라

이 늙은이의 오늘일은 축하하는 듯

좋은 철과 아름다운 경치를 한꺼번에 겸하였네,

, 앉아서 추녀 끝에 날아드는 새를 보면

찬 기운이 한층 더 한 줄을 알 수가 있고

잠자다가 일어나 도도한 흥이 솟아나면

냉담한 가운데 난만한 정을 모두 다 겸하네,

, 반쯤 취한 김에 크게 읊조리는 추녀 끝에는

촌스러운 정과 한가한 생각이 함께 더해가

저녁나절에 저 먼들 밖을 바라보면

봄에 할 일이 한 창 일어나는 기상을 더 겸하였네,

, 굽어보면 술잔 속에 모자 끝이 비추는데

나도 몰래 호연한 정흥(情興)이 이내 더해 가네,

부디 그대는 평생 뜻을 일찍 이루시라

충효(忠孝)와 좋은 재질(才質)을 함 몸에 겸했으니

임기(任期)를 마치고 진보현(眞寶縣)“지금의 청송군(靑松郡) 속면(屬面)” 비봉산(飛鳳山)아래에 돌아와 그곳 지세(地勢)가 안존하고 텅 비었으며 수려한 것이 사랑스러워 거지(居址)를 마련할 때 지리(地理)를 보는데 밝으셔서 길지(吉地)를 택하여 문묘(文廟) 및 정자(亭子)를 짓고 학문을 강론하고 무술을 연마하며 김을 매고 가꾸는데 힘쓰고 부지런하며 후생사업(厚生事業)에 즐겨하도록 권장하시어 순박(淳朴)한 풍속이 오래 이어지도록 하시고 호()를 봉은(鳳隱)이라고 스스로 짓고서 일생을 마치시니 호는 산의 이름을 따고 한적한 곳에서 덕()을 닦는다는 뜻이었다. ()는 진보현(眞寶縣) 북흥구동(北興邱洞) 뒷산 기슭이며 비룡산(飛龍山) 앞 계좌(癸坐)언덕이다. 배위(配位)는 풍산김씨(豊山金氏) 서유(西裕)의 따님이며 부군(夫君) 직위(職位)에 따라 숙부인(淑夫人)이시며 자질이 안존하고 곧으며 부덕(婦德)을 갖추셨다. ()는 부군(夫君) ()와 합폄(合窆)이며 21여를 출생(出生)하셨다. 장남(長男) 소생(紹生)은 벼슬이 교수(敎授)며 차남(次男) 인생(麟生)은 참봉(參奉)이며 여()는 평산(平山) 신영석(申永錫)에 시집가니 교도(敎導). 소생(紹生)의 아들은 이충(移忠)이며 인생(麟生)의 아들은 배원(培源)이며 증손(曾孫)과 고손(高孫)들은 기록(記錄)을 생략(省略)한다.

()은 아름다운 자질(資質)에 침착한 성품(性品)을 하늘이 점제하사 행실이 겸손하고 근엄하며 꽃다운 나이에 학업을 시작하여 남이 하나를 배우면 자신은 백을 알고 효성(孝誠)에서 충성(忠誠)에 옮기고 백성을 잘 살도록 다스렸다. 많은 저서(著書)가 필연코 전해졌을 것이지만 반천(半千)의 세월(歲月)이 흐르는 사이 여러 번의 병란(兵亂)에 불타버렸으니 오늘 그 당시를 떠올려도 유풍(遺風)이 막연하다. 어느 날 공()의 후손(後孫) 창환(昌煥)씨가 약간의 글월을 내가 사는 장천(章川), 허술한 집을 찾아와서 유사(遺事)를 기록(記錄)해 달라고 하기에 나는 글을 쓸 줄 모르는데 어찌 감히 선유(先儒)의 높은 행실(行實)을 쓰겠는가,”하고 짐짓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옷깃을 여미고 바로 앉아 글월을 받들어 살피니 한 점의 고기로 오솔의 맛을 짐작하고 한 깃의 무늬로 봉()의 온몸에 채색을 보는듯하여 화려한 원고(原稿)를 참고로 우()와같이 기록(記錄)하지만 후생(後生)의 부족(不足)함이 외람된 줄 알아 오직 글 잘하는 군자(君子)의 채택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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